SK지오센트릭, 친환경의 꿈을 접다…전략적 후퇴인가, 현실적 선택인가

sk지오센트릭의 사업철수 이해를 돕는 이미지입니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이 추진해오던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친환경 사업 확장에 적극적이던 SK그룹 내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결정은 본업인 석유화학 사업의 부진, 그리고 수익성 확보에 대한 우선순위 전환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석유화학 침체와 실적 악화, 사업 중단의 원인

SK지오센트릭은 본래 SK이노베이션의 친환경 전략을 이끌며,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을 핵심 미래 먹거리로 삼고 있었다. 울산에는 1조8000억 원을 투입해 연산 32만 톤 규모의 재활용 공장을 2024년 완공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프랑스 생타볼 지역에도 연산 7만 톤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계획이 최근 들어 무기한 연기 또는 중단되면서, 사실상 사업 철수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SK지오센트릭의 실적 악화가 크게 작용했다. 회사는 2023년 677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고, 부채비율도 116.8%에서 133.5%로 증가해 재무 건전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석유화학 업황이 장기 침체 국면에 접어들며 본업의 수익 기반이 흔들리는 가운데, 추가적인 재정 투입이 요구되는 신사업에 대한 내부 반발이 커졌을 것으로 분석된다.

직원 재배치, 사업 구조조정의 신호탄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 중단에 따라 SK지오센트릭 내부 직원들의 이동도 가시화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3년 이상 근무한 직원을 대상으로 다른 계열사로 이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이를 적극 활용해 SK지오센트릭 소속 인력의 재배치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부서 이동이 아닌, 사업 전체 구조조정의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미 국내 폐플라스틱 업체들과 맺었던 원료 공급 계약도 다수 파기된 상태다. 재활용 사업에서 핵심인 원료 수급망을 스스로 정리했다는 것은, 사업 중단이 일시적인 결정이 아니라 장기적 전략 변경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SK그룹 차원에서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에 대한 평가가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재집권 이후 ESG 트렌드 약화, 사업성 악화에 영향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의 중단은 단지 수익성 문제뿐 아니라, 최근 글로벌 ESG 트렌드의 변화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5년 미국 대통령직에 다시 오르면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규제 흐름이 한풀 꺾이는 분위기다. 미국은 세계 최대 경제권이자 정책 트렌드 선도국인 만큼, ESG 약화는 전 세계 친환경 산업 전반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화학적 플라스틱 재활용 방식은 본래 기대와는 달리 생산 단가가 기존 석유화학 공정보다 2~3배나 높고, 탄소 배출 저감 효과도 크지 않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ESG 규제가 느슨해지자, 친환경 제품에 대한 수요나 정책적 인센티브도 줄어들게 되고, 결과적으로 SK지오센트릭의 사업성 확보에 큰 어려움을 주는 요인이 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SK그룹은 수소사업에 대한 전략도 재검토 중이다. SK E&S는 지난해 SK이노베이션과의 합병 과정에서 수소 관련 부서를 대거 축소하고 조직 효율화를 단행했다. 연산 3만 톤 규모로 지은 액화수소플랜트도 기대에 못 미치는 가동률을 보이고 있어, 그룹 전반의 친환경 전략은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결론: 아쉬움 속 빠른 판단…이젠 새로운 방향이 필요하다

SK지오센트릭의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 철수는 친환경 산업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존재하는 시점에서 다소 아쉬운 결정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폐플라스틱 재활용 산업은 기술적, 경제적 한계를 명확히 안고 있으며, 수익성을 담보하지 못한 채 무리한 확장을 이어가는 것은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SK지오센트릭이 조기에 사업을 정리하고 손실을 최소화한 것은 오히려 긍정적인 전략 전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 막연한 미래보다, 지금 당장 실행 가능한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앞으로는 보다 실효성 있고 지속 가능한 ESG 전략을 마련해, 새로운 친환경 성장 동력을 찾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